박해성의 시조

체하다 - 발해시편 4

heystar 2017. 3. 8. 18:01

                   

            체하다

               - 발해시편 4


                                       박해성



    며칠째 체한 듯이 명치가 뻐근합니다.


    산책을 나섰지요. 상경의 중심을 관통하는 주작대로는 이 도시

등뼈이자 동맥입니다. 대낮 천천히 도심을 거닐다 한 사내를 만

났어요. 어느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했는지 맨발로 절뚝이는 무장해

제 패잔병, 봉두난발에 겹겹이 걸친 찌든 넝마조각이 그날 그 갑옷

인 듯 참 버거워 보였습니다. 발해 변방 사투리인지 중얼중얼 히죽

히죽 알 수 없는 혼잣말로 도깨비 허깨비처럼 흐늘거리는 젊은 사

텅텅 비워 빈 눈동자 깊이를 잴 수 없는 먹먹한 그 어둠을 어쩌나,

는 흘깃 훔쳐보고 말았는데요. 주변을 압도하는 장엄한 지린내 속

에 시커먼 손가락으로 불어터진 국수발을 입속으로 쓸어 담는 아,

그도 한때는 천리마 잔등에서 활 쏘며 신출귀몰 이 산하를 주름잡던

용맹스러운 전사였을 터


    여기는 어디입니까? 패배주의가 꽃피는



                             - 현대사설포럼 2016, Vol,7 『문득, 먹먹한』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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