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시대

설경 산수화 -박해성​                           적막의 입김인 듯 찢어버린 연서인 듯 ​                          눈 내리는 소리에 점 하나도 못 찍은 자리​                          살아서 밟을 수 없는 저 찬란한 유배의 땅

업보 박해성 詩도 없이 늙어가기는 너무 억울하잖아 시고 떫은 글 몇 줄로 영혼을 팔고 사는 전생에 죄가 많은 너, 그리하여 시인이다

첨성대 꽃양귀비 박해성 창부의 립스틱 같은 수도승의 파계 같은 통곡의 발화점 같은 만개한 편두통 같은 피멍 든 앙가슴 빠개는 저 붉은 비명, 낭자하다

선암사 박해성 면벽 365일, 꽃으로 돌아왔습니다 미련인 듯, 죄업인듯 하필이면 그대 등 뒤 들키면 어찌할거나 속수무책 이 절정을

동백, 지다- 박해성 그대의 혈서 앞에 두 무릎을 꿇는다 아직 핏기 덜 마른 그 맹세에 덧난 사랑 엎드려 울음을 참는 입술에 입술을 대다

경주왕릉 - 박해성 오늘도 왕께서는 불면에 뒤척이신다 꽃등 밝혀 보초를 선 목련이 그 증거다 편년체 진솔한 서사는 아직도 미완이신가?

정동진, 2 - 박해성 항해에 지친 노병 허공에 멈춰섰다 난바다 회오리에 나침반이 고장났나 별들의 망명정부에 SOS를 치고 있다

성밖숲 - 박해성 사랑도 사상도 잊고 묵언수행 삼매시네 늙을수록 아름다운 당신을 닮으려니 나 죽어 한 오백년쯤 좋이 걸리겠네

수섬 - 박해성 폐경기의 외딴 섬 시울 붉은 노을 아래 바람에 투항하는가, 백기 흔드는 삘기꽃 세월에 백기를 들고 나도 항복 할까보다

서울의 달 - 박해성 짓밟힌 무덤 위에 화류지옥이 눈부시다 유황불처럼 들끓는 소돔의 하늘가에 헤식은 심장을 내걸고 비명을 삼키는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