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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① 읽다 만 헌책처럼 지루한 나를 펴지요
더러는 접힌 갈피 부서지는 마른 꽃잎
아깝게 놓친 행간에 놀빛이 흥건하고
침 발라 넘겨가며 더듬더듬 읽는 속내
이골 난 난독증세 고백한 적은 없지만
자꾸만 시작과 끝이 오락가락 헷갈리는
천둥 번개 스쳤는지 얼얼한 구절마다
세기의 금서인가, 글투 사뭇 불온한데
도치된 문장을 베고 열반에 든 하루살이
그렇구나! 자전 공전 멀미나는 이 행성에
실수인 듯 점 하나로 단숨에 요약되는 생,
글쎄요, 맞는 말인지‥‥?
독후감은 보류하죠
② 세파 때에 절고 절은 걷옷 속곳 다 벗고서
잡내 스민 몸뚱어리 그마저도 벗어 놓고
맨 처음
안착한 고향
자궁 속을 거닐거나
예시 ①은 박해성의 시조 <독서유감> 全文이고 ②는 산강의 연재시조 <오솔길> 전문이다. 두 작품의 병치 인용은 두 텍스트의 상호텍스트성 때문이다. 두 텍스트는 너무 닮았다.
①의 박해성은 독서의 독서물이 책이 아니고 "읽다 만 헌책처럼 지루한 나"의 삶이다. ②의 산강 역시 "세파 때에 절고 절은" 삶(몸뚱어리)이다. 그리고 그런 두 삶의 지향의식도 닮았다. ①의 "놀빛"이 낙막落莫이 그 지향점이라면 ②는 그래도 다시 태어날 여지가 보이고 ①은 황혼 이후 암흑이 아닐 수 없다. 이와같은 전통시조의 낙막주의落莫主義는 그 연원이 시심詩心 이 지향하는 바가 군왕이나 비사회적 인물을 향해 있었던 조선조 정치주의 시정신 탓이겠다. 현대시건 정통 시조이건 포에지의 중차대함은 췌언을 용서치 않는 바다. 박해성의 언어와 구성의 산뜻함은 시조읽기의 매력을 더해주는 순기능이 값지다.
월평 - 이수화
[출처] 월간 『문학세계』2013, 11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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