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리뷰

지난계절 좋은시조 리뷰 - 이강룡

heystar 2013. 12. 18. 10:46

  계간 문학지 2012, 봄호에 발표한 작품 <해장국 서설>이 좋은시조로 뽑혀 나래시조 여름호에 리뷰되었다. 아, 다 보고 있었구나~ 두렵다.

(이미 다 지나간 나의 리뷰 작품을 찾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할 수 없이 발표나 리뷰 순서를 무시하고 자료를 찾는대로 싣기로 한다.)   

 

         

 

 

        해장국 서설

 

                      박 해 성

 

 

선지인 듯 검붉다,

뚝배기에 끓는 하루

누구는 떠났건만 이 몸 아직 살아있어

허기도 은총만 같아 그렁그렁 반가운 날

 

세상에나

착하게도 뼛속까지 우려내는

온전한 소신공양

나는 소의 환생인가?

천천히 되새김질하는 명제가 참 질기다

 

창밖엔 눈 내린다, 소몰이 창법唱法으로

눈발 속에 흐려지는 천지간 모든 경계

음매에,

헛기침하며

사람처럼 국밥을 뜬다

 

                 - 계간<나래시조> 2012 봄호 수록.

 

[작품평]

  시인의 일상사의 한 모퉁이가 잘 투영된 작품이다.  추운 겨울날 "소몰이 창법"으로 쏟아지는 눈발이 보이는 어느 허름한 해장국집에 앉아 선지국 뚝배기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생각을 되새김하던 시인은 자신이 마침내 소가 되어 "사람처럼 국밥을 "먹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사를 노래하되 빠지기 쉬운 넋두리로 끝나지 않고, 그 속에서 독자로 하여금 시적진실(詩的眞實)을 느끼도록 하는데 이 작품의 묘미가 있다.

 

   제목의 서설은 序說인지 敍說인지 아니면 瑞雪인지 한자가 없어 분명한 것은 알 수가 없지만 읽어가는 중에 시인은 아마도 瑞雪을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첫 수의  주제는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를 읊고 있다. 설설 끓는 해장국 뚝배기를 앞에 놓고 그 검붉은 핏국을 들여다보며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아울러 허기져도 이승 하늘 아래 살아있음이 "그렁그렁" 눈물 고이도록 감사함을 읊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이승 하늘 아래서 아웅다웅 싸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결여된 데서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문득 서정적 자아는 자신이 소가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가 되어 곱씹고 있는 생각, 곧 '되새김질'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생활의 파편들일 수도 있고 시인으로서의 시를 잉태하기 위한 고통의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창밖엔 눈이 내린다, 소몰이 창법으로/ 눈발 속에 흐려지는 천지간 모든 경계", 눈은 "소몰이 창법"으로 내리고 있다. 조용조용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흩날리며 내리는 눈의 시적 표현도 절묘하다. 눈이 내리면서 지워지는 세상의 구분, 빈부, 귀천, 미추, 그리고 지상의 온갖 현란한 색깔들마저 다 지워 버리는 눈, 마침내 소와 나의 경계까지도 덮으며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시적 자아는 사람의 소리가 아닌 "음메에" 헛기침을 하며 "사람처럼 국밥을 뜬다." 국밥을 뜨는 행위는 무엇일까? 그것이 곧 시가 아닐까?  선지국 뚝배기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시인은 뚜렷한 주제의식 없이 담담하게, 그리고 세상을 향한 따듯한 가슴을 열어 보이고 있다.  (글쓴이 - 리강룡) 

                                                        [출처] 『나래시조』2012, 여름호에서 발췌.

리강룡시인의 약력
1983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등단.

현대시조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나래시조문학상 외,
시집; 『한지창에 고인 달빛 』외 3권 수필집 2권, 평론집 1권 외 논문집 등.

경북중등문예교육회장, 경북중등교육협의회장, 경북외국어고등학교장 역임 외.

현재 <중부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