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이상국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선덕여왕 시절부터 중천을 떠돌던 내가
어느 날 발 크고 소리 잘하던 정선 여자
내 어머니 자궁에 전광석화처럼 뛰어들어
늙은 시인이 될 줄은 몰랐어
그래도 그게 어디냐
벌레도 아니고 마소도 아니고
그것도 노래하는 사람이라니
어머니를 잘 만났지만
공일마다 찬송가를 부르러 다니면서
쓰레기 같은 구호물자를 타 왔다고
예배당에 못 다니게 하던 아버지도 있었고
함부로 던진 돌멩이에 맞아 코피를 흘리며
아직 내 뒤를 따라오는 소도 있어
오, 생 하나가 고작 이런 것으로 가득하다니
그래도 그런 나를 어떻게 피해 가겠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데
어제는 내 자리에 차를 댔다고
옆집 남자에게 욕이나 해대는 이런 나를 누가 알겠어
다른 건 되어 본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나도 내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
그래도 실없는 나의 노래가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진 몰랐어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제목
-출처; 계간 《애지》2020, 가을호에서
- 시집; 《집은 아직 따듯하다》《뿔을 적시며》《달은 아직 그 달이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