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꽃의 정치

heystar 2020. 7. 10. 13:58

      꽃의 정치

 

                 이영식

 

 

불 질러놓고 보는 거야

가지마다 한 소쿠리씩 꽃불 달아주고

벌 나비 반응을 지켜보는 거지

그들의 탄성이 터질 때마다

나무에서 나무로 번지는 지지 세력들

꽃의 정부가 탄생되는 거라

 

꽃은 다른 수단의 정치

반목과 대립이 없지

뿌리는 흙속에서 잎은 허공에서

물과 바람

상생의 손 움켜쥐고

나무마다 꽃놀이패를 돌리네

 

봄날 내내 범람하는 꽃불을 봐

꿀벌은 꽃이 치는 거지

벌통으로 키우는 게 아니야

코앞에 설탕물을 풀어놓은 들

그게 며칠이나 가겠어

검증되지 않은 수입 교배종으로

벌 나비의 복지를 시험하지 마

같은 꽃 같은 향기더라도

오는 봄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행복해 하는 거야

 

봄날은 간다

꽃의 정부가 다하더라도

후회는 없어

튼실한 열매가 뒤를 받혀 줄 테니까

 

---이영식 시집 <꽃의 정치>(2020, 지혜사랑)에서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하여

시집 「휴」, 「희망온도」, 「공갈빵이 먹고 싶다」를 상재하였으며

한국시문학상, 2012년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 제 17회 애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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