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 최정례

heystar 2011. 5. 31. 10:41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詩/최정례

 

 

그러니, 제발 날 놓아줘,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든, 그러니 제발,

 

저지방 우유, 고등어, 클리넥스, 고무장갑을 싣고

트렁크를 꽝 내리닫는데......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플리즈 릴리즈 미

가 흘러나오네

건너편에 세워둔 차 안에서 개 한 마리 차창을 긁으며 울부짖네

 

이 나라는 다알리아가 쟁반만 해, 벚꽃도 주먹만 해

지지도 않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피어만 있다고

은영이가 전화했을 때

 

느닷없이 옆 차가 다가와 내 차를 꽝 박네

운전수가 튀어나와

아줌마, 내가 이렇게 돌고 있는데

거기서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그래도 노래는 멈출 줄을 모르네

 

쇼핑카트를 반환하러 간 사람, 동전을 뺀다고 가서는 오지를 않네

은영이는 전화를 끊지를 않네

 

내가 도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핸들을 꺾었잖아요

듣지도 않고 남자는 재빨리 흰 스프레이를 꺼내

바닥에 죽죽죽 금을 긋네

 

십분이 지나고 이십분이 지나도 쇼핑센터를 빠져나가는 차들

스피커에선 또 그 노래

이런 삶은 낭비야, 이건 죄악이야,

날 놓아줘, 부탁해, 제발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날 놓아줘

 

그 나물에 그 밥

쟁반만한 다알리아에 주먹만한 벚꽃

그 노래에 그 타령

지난 번에도 산 것을 또 사서 실었네

 

옆 차가 내 차를 박았단 말이야 소리쳐도

은영이는 전화를 끊지를 않네

훌쩍이면서

여기는 불루베리가 공짜야 공원에 가면

바께쓰로 하나 가득 따 담을 수 있어

불루베리 힐에 놀러가서 불루베리 케잌을 만들자구

플리즈 릴리즈 미, 널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든

 

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그러니 제발, 날 놔 줘.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놓아달란 말이야

 

                                                                          출처:네이버 카페 오늘의 좋은 시 

1955년 경기 화성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
199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레바논 감정><햇빛 속에 호랑이><붉은 밭><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등.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김달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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