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맞이하는 법
복효근
오랜 우기 끝에 불붙은 일몰을 향하여
걷기도 벅차 보이는 노인 한 분
내 몇 미터 앞에서
지극정성 합장 배례하였다
해가 꼴깍 지고 나서도
몇 발짝 걸음을 옮기면서 연신 합장을 하였다
뜨는 해에게
뜨는 달에게 그러는 것은 보았어도
지는 해, 어둠에게 합장이라니
희망이라고는 더 있어 보이지 않는,
감사할 것도 없어 보이는,
구겨진 주름 사이로
생이 다 빠져나가서 헐렁한 부대자루 같은,
이미 한 발은 다른 세상에 걸치고 있는 것 같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어둠 한 조각,
어둠인 노인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다음에야
비로소 듣는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반야심경 한 구절
무엇에랄 것 없이
나도 합장하였다
* 문장 웹진 2009년 7월호
1962년 전남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 학사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 새에 대한 반성문> <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목련꽃 브라자> <어느 대나무의 고백><마늘 촛불> 수상: 편운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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