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우물
한성례
피를 모으느라 여자들은 몸이 들쑤신다
흙은 온몸으로 지하수를 돌게 하고
물줄기로 길을 내며 모여든 피의 열기로
늘 자궁은 뜨겁다
한달에 한번 물을 바꿔 넣으려고
여자들은 물가로 모이고
집중 되는 시선이 두려운
고향 마을 천수답 한 가운데
하늘 향해 뻥 뚫린
내 어릴 적 우물
여자들은 달구어진 몸이 뜨거워
물을 퍼내고 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감추어둔 죄
속절없이 솟구치던 뜨거움을
한 여름에도 뼈속까지 차가운 물
바가지로 푹푹 퍼서 끼얹던 고향 우물
그 우물가로
전생에 죄진 생들이 몸살 앓듯
지은 죄 모두 둘러 메고
스믈스믈 모여들고
실뱀으로 구렁이로 꽃뱀으로
거꾸로 매달려 있거나 물구나무 서있다
생전에 열기 식힌 그 우물가 찾아
물기 있던 몸이라 어쩔 수도 없던
황홀한 죄를 따라 찾아온 우물
문둥병 걸려 소록도 떠난 남편 자리
시동생으로 대신하다 태어난 아이
우물에 던져 넣은 여자
청상과부로
젊어서 혼자된 시아버지
물기 적신 여자. 여자들
펑펑 솟던 우물처럼
내 기억의 우물가에는 꿈에서조차
소문이 범람하고 있다
출전- <시평> 200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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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
- 1986년 '시와의식' 으로 등단
- 허난설헌 문학상 수상
- 역서 <황의 계절>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21세기 한일 신예시인 100인 시선집 <새로운 바람>을 한일 양국어로 번역.
안도현, 최영미, 고형렬 시선집 일어 번역출간
- 시집 <實驗室의 美人> 일본어 시집 <감색치마폭의 하늘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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