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판지*에서 - 박해성
카메라 줌렌즈가 집요하게 어둠을 응시한다
오래전 멸종 된 원시 파충류처럼
물속에 절반쯤 몸을 숨긴 검푸른 나무들
먹잇감을 노리는지 소름 돋는 침묵이다
고감도의 전율은 늘 공복에서 절정이다
저수지 물 위를 맨발로 걷는 혼령처럼
산발한 나무들이 우줄우줄 허공으로 손을 뻗친다
나는 옥저를 불며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한 것도 같은데… 꿈틀꿈틀
내 몸을 휘감던 숨결, 뼛속까지 녹아들던 그 숨결에
안개, 안개 속에서 아이 셋을 낳고 살았는데
날개옷 같은 건 잊은 채 까맣게 살았는데…
문득 둘러보니 피리소리 그치고 외눈박이 해가
단칼에 동녘을 좍 찢는다. 핏물 우련 번지는 수면에
천천히 눈 뜨는 검은 나무, 뭉클한 몸내
비늘 다 떨어져나간 삼천년 묵은 저 이무기
어쩌자고 무작정 앵글 속으로 달려드는가, 어쩌자고
다시 돌아와 내 앞에 현현하는가, 당신!
* 경남 창원 소재 저수지.
- 2016, 시동인지 『현상』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