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류정환
저것은 바다를 건너 온 몸이다.
젖몸살을 앓던 열여섯 달뜬 꿈을 버리고
아버지 같은 남편을 따라온 어린 신부들같이
조금만 기다려라, 돈 벌어 오마
노잣돈 빚 얻어 입국한 오라버니같이
고향집 떠나던 날, 그 밤에 달은 떴을라나
초승달처럼 뒤를 주춤주춤 돌아보며
칠흑 같은 바다를 건너온 몸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먼 나라는
가도 가도 검은 물결만 일렁이는 삼만 리 길.
말로만 듣던 코리아는
하루하루 몸을 갉아먹어야 견딜 수 있는 나라.
아파트 주방 한 구석,
단 것으로 가득 채웠던 몸도 지치고
샛노랗게 단장했던 꿈도 시들어
아침저녁 다르게 거뭇거뭇 까무러치는데
오오 어머니의 얼굴색, 내 한 몸 헐값으로 가난은 가렸을라나
아무래도 나는 못 가요, 쪽지도 한 장 없이 일생을 마치는
이것은 바다를 건너온 몸, 그리운 고향 들판을 추억하는지
너덜너덜 껍데기만 남은 그릇에 단 내음이 가득하다.
- 보은문학회- 문장대 제 15집 『새들처럼』중에서 발췌
- 1965년 충북 보은 출생
- 충북대 국문학과 졸업
- 1992년 『현대시학』등단
- 시집; 『붉은 눈 가족』,『검은 밥에 관한 고백』,『상처를 만지다』
-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2월시 동인.
- '고두미' 출판사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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