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치마 - 문정희

heystar 2014. 6. 10. 11:33

치마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출전_ 『양귀비꽃을 머리에 꽂고』(민음사)

 

1947년 전라남도 보성 출생.

고려대학교 (교수)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박사
1969년 월간문학 시 '불면', '하늘' 당선
2013년 제10회 육사시문학상
2007~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 『문정희시집』, 『양귀비꽃을 머리에 꽂고』, 『지금 장미를 따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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