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심우도에 들다 - 금시아

heystar 2014. 5. 30. 19:27

                  심우도에 들다

 

                                                                              금시아

 

 

 

   한가한 걸음으로 사내는 배에 오른다 인적이 드문 청평사 가는 길 누구든

호수의 족적에 자신의 족적을 겹쳐놓기 좋은 날이다 호수의 표정이 검은 구

름칠로 위장되었다

 

     사내는 극락보전을 돌고 소는 사내를 따라 돌고, 사내가 무슨 말을 했는

지 마른 건초를 내밀었는지 잔등을 내밀며 소는 말한다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왔노라고 뿔은 어느 노승에게 주어 버리고 여전히 그 강물로 목을 축이노라

고 잔등은 이내 누런 물결이다 낡은 수레가 얹혔던 자국엔 몇 그루 버들가지

가 피어 있다

 

    수없이 이삿짐을 쌌다 진흙 속에 빠진 바퀴처럼 아이들이 태어났다 수레

는 지쳤고 바퀴는 어딘가로 떨어져 굴러갔다 낙뢰를 맞은 난간의 화분은 떨

어져 나간 옆구리를 수거하지 못했다 불안은 매번 사내의 다리를 걸고 넘어

졌다

 

    소를 보기라도 한듯 사내의 발자국이 빙판길에 나동그라진다 수레바퀴 자

국은 여전히 어디론가 가고 있고 흰 소는 한 겨울 양지쪽에서 유유히 녹고 있

는 중이다 배를 수소문했지만 선주는 청평사에는 소가 없다고 말한다

 

    없는 소를 끌고 가는 방법은 고삐를 쥐는 것, 사내는 집에서부터 챙겨 온

올가미에 소의 목인지 수레의 목인지 아니면 한겨울 양지쪽의 버드나무인지

를 맨다 기울어가는 햇살이 잡식성 호수를 투망질 하고 있다 겨울의 오후는

자꾸만 출렁인다

 

- 계간 『시와 표현』제 4회 신인상 수상작. 

 

금시아(본명 김인숙)

- 1961년 광주 출생.

- 2010년 제17회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 문예작품 대상.

- 2011년 제3회 여성조선문학상 수상.

- 2014년 『시와 표현』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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