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그림
박무웅
사무실엔 한 폭의 황산이 걸려있다
얼마 전 여행에서 사온 먹빛 산이다
세관에선 액자만 살피고 산봉우리 몇 개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기암절벽과 수천그루의 소나무와
바람은 무사통과되었다
전설의 장사(壯士)처럼
바위 많은 산 하나를 통째로 들고 왔다
그날부터 즐거운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오르던 산 대신 그림 속 일만 계단을 오른다
반갑지 않은 사람이라도 찾아오면
슬쩍 그림 속 소나무 뒤로 숨곤 한다
그럴 때마다 보였다
돌을 지고 오르던 옛 석공과
구름이 쉴 새 없이 피어나오는 신비한 바위와
세상의 모든 새를 품고 있다 날려보내는
포란의 고목 하나를 숲 속에서 보았다
삭발한 자의 속죄가 숨어 있고
몇 천 년을 소리내지 않고 엎드려 있는
짐승 한 마리를 보았다
그림 밖을 나오면
쉼 없이 절벽을 깎는 소리가 시계 속으로 들어가고
날개가 부러진 빈 바람 소리가 선풍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알았다
큰 산 하나를 뒤질 수는 있어도
작은 그림 속은 쉽게 뒤질 수 없다는 것을
한참 동안 그림 속을 살피다 가는 사람들
저마다 황산 숲 속에 무언가를 숨겨놓고 간다는 것을
- 박무웅 시집 『지상의 붕새』(작가세계, 2014)에서
충남 금산 출생.
1995년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 『내 마음의 UFO』(한국문연, 2009년). 『지상의 붕새』(작가세계, 2014)
현재 신성전자부품 회장. 인도네시아 신성테크 회장 . 화성예총 회장.
계간 『시와 표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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