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숨은 그림 - 박무웅

heystar 2015. 1. 8. 15:00

       숨은 그림

 

                         박무웅

 

 

사무실엔 한 폭의 황산이 걸려있다

얼마 전 여행에서 사온 먹빛 산이다

세관에선 액자만 살피고 산봉우리 몇 개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기암절벽과 수천그루의 소나무와

바람은 무사통과되었다

전설의 장사(壯士)처럼

바위 많은 산 하나를 통째로 들고 왔다

그날부터 즐거운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오르던 산 대신 그림 속 일만 계단을 오른다

반갑지 않은 사람이라도 찾아오면

슬쩍 그림 속 소나무 뒤로 숨곤 한다

그럴 때마다 보였다

돌을 지고 오르던 옛 석공과

구름이 쉴 새 없이 피어나오는 신비한 바위와

세상의 모든 새를 품고 있다 날려보내는

포란의 고목 하나를 숲 속에서 보았다

삭발한 자의 속죄가 숨어 있고

몇 천 년을 소리내지 않고 엎드려 있는

짐승 한 마리를 보았다

그림 밖을 나오면

쉼 없이 절벽을 깎는 소리가 시계 속으로 들어가고

날개가 부러진 빈 바람 소리가 선풍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알았다

큰 산 하나를 뒤질 수는 있어도

작은 그림 속은 쉽게 뒤질 수 없다는 것을

한참 동안 그림 속을 살피다 가는 사람들

저마다 황산 숲 속에 무언가를 숨겨놓고 간다는 것을

 

- 박무웅 시집 『지상의 붕새』(작가세계, 2014)에서

 

 충남 금산 출생.

1995년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 『내 마음의 UFO』(한국문연, 2009년). 『지상의 붕새』(작가세계, 2014)

현재 신성전자부품 회장. 인도네시아 신성테크 회장 . 화성예총 회장. 

       계간 『시와 표현』 발행인.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북 - 류인채  (0) 2015.01.21
나무도마 - 신기섭  (0) 2015.01.08
도축사 수첩 - 박형권  (0) 2014.12.02
바나나 - 류정환  (0) 2014.11.15
엘리베이터 속의 파리 - 최승호  (0) 201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