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
박 해 성
내 윗대 할아버지는 몽골의 전사라 했지, 본디 고운 할머니는 여진족 규수였는데
청동기 거울을 깨고 게르 촌으로 도망쳤단다
개기월식 개인 후에 귀 큰 아이 태어났지, 금모래빛 살결에 엉덩이 푸른 반점
절반은 바람이 키운 대륙의 아들이시다
늑대보다 더 빠르게 말 달리던 열여덟 살, 눈보라를 방목하던 중원을 가로질러
동녘 성 공주님에게 별을 따다 바쳤더란다
북극성이 점지하신 만주 도령 첫울음이 우레만큼 우렁차 변경에 소문 짜했다나,
잘 자라 호밀밭처럼 구레나룻 무성했지
들꽃에 콧등 비비는 고집 센 망아지같이 그 사내 꽃물 들어 산 넘고 물 건넜지,
도도한 김해김씨 문중 큰 아기씨 손을 잡고
강 건너는 동안에 불혹 넘긴 울 아부지, 겨우 건진 검불 같은 외동따님 재롱에
타고 난 역마살이야 꾹 눌러 참고 사셨다는
끊어진 시간의 매듭 더듬더듬 잇다보면 이두박근 남도 청년 월남에서 돌아온 날,
반갑다 국기 흔들던 뉘 치마도 펄럭였는데
하필이면 내 딸인가 식지 않는 유목의 피, 어느 집안 내력인지 바람의 길을 따라
세상을 한 바퀴 반쯤 신들린 듯 누빈 낭자
숱 많은 검은 머리 코리아 처녀에 반해 도원에 둥지 틀었지 미국산 청교도 후예,
머잖아 초록별 닮은 대지구인 만나겠다
- <2010 신춘문예 당선시집>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