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시조

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

heystar 2011. 2. 3. 02:53

 

         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

 

 

                                                     박 해 성

 

 

 

  내 윗대 할아버지는 몽골의 전사라 했지, 본디 고운 할머니는 여진족 규수였는데

청동기 거울을 깨고 게르 촌으로 도망쳤단다

 

  개기월식 개인 후에 귀 큰 아이 태어났지, 금모래빛 살결에 엉덩이 푸른 반점

절반은 바람이 키운 대륙의 아들이시다

  늑대보다 더 빠르게 말 달리던 열여덟 살, 눈보라를 방목하던 중원을 가로질러

동녘 성 공주님에게 별을 따다 바쳤더란다

 

  북극성이 점지하신 만주 도령 첫울음이 우레만큼 우렁차 변경에 소문 짜했다나,

잘 자라 호밀밭처럼 구레나룻 무성했지

  들꽃에 콧등 비비는 고집 센 망아지같이 그 사내 꽃물 들어 산 넘고 물 건넜지,

도도한 김해김씨 문중 큰 아기씨 손을 잡고

 

  강 건너는 동안에 불혹 넘긴 울 아부지, 겨우 건진 검불 같은 외동따님 재롱에

타고 난 역마살이야 꾹 눌러 참고 사셨다는

  끊어진 시간의 매듭 더듬더듬 잇다보면 이두박근 남도 청년 월남에서 돌아온 날,

반갑다 국기 흔들던 뉘 치마도 펄럭였는데

 

   하필이면 내 딸인가 식지 않는 유목의 피, 어느 집안 내력인지 바람의 길을 따라

세상을 한 바퀴 반쯤 신들린 듯 누빈 낭자

  숱 많은 검은 머리 코리아 처녀에 반해 도원에 둥지 틀었지 미국산 청교도 후예,

머잖아 초록별 닮은 대지구인 만나겠다

 

 

                                             - <2010 신춘문예 당선시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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