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시조

몽자류 소설처럼

heystar 2011. 2. 3. 02:33

 

 몽자류夢字類 소설처럼

 

 

                                  박해성

 

 

세잔의 정물화처럼 풍요로운 저녁 식탁

수도꼭지 비틀면 코카콜라가 쏟아지지

무너진 어느 왕조의 쓰디쓴 사약 같은

 

창 밖엔 그날다이 백기를 흔드는 눈발

절반쯤 놓쳐버린 외국영화 자막인 양

적멸의 ‘뉴 타운’에는 세월 그리 흘려놓고

 

때로는 목차에 없는 생이별도 아름답지

잘 벼린 비수 뽑아 자명고를 찢는 순간

천리마 말발굽소리 절정으로 내달리게

 

행간에 가위 눌린 독자여 안심하시라

한 세상 사는 일이 하룻밤 꿈인 것을

비장의 에필로그는 반전이다, 해피엔드!

 

뉘인가, 책장 덮고 비몽사몽 얼얼한 이

전생에 마신 화주火酒 이제 취기 오르는지

벼랑 위 철쭉꽃인 듯 네온사인 뭉클, 붉다

 

                                                                       - < 2010 신춘문예 당선시집 >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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