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리뷰

열린시학 계간평 - 박성민

heystar 2013. 12. 27. 23:35

         


 

해 지는 바닷가에 늙은 개가 서성인다

 

모가지를 파고드는 질긴 가죽목걸이에

검붉은 피가 엉겨 붙은 앞발을 절룩인다

 

세파에 찌든 털은 백구인지 누렁인지

고작 서너 뼘 남은 목줄을 풀지 못해

얼마나 끌고 다녔을까,

너덜대는 희망처럼

 

안개꽃을 흩뿌리는 파도는 배경이다

제 상처를 제가 핥는 개뼈다귀 같은 자유,

 

눈곱 낀 노병의 눈이 응시하는 하늘이 붉다

                                                   - 박해성. <붉다> 『유심2013, 8월호.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것은 유기견, 즉 버려진 개다. 근래에는 예방접종, 건강검진이나 사료 등 애완견을 키우기 위한 비용이 증가하면서 늙은 애완견들을 데리고 섬이나 바닷가에 놀러가서 그곳에 버리고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렇게 유기된 개들은 굶어죽거나 유기동물 수용시설에서 강제로 안락사 당하기도 한다. "모가지를 파고드는 질긴 가죽 목걸이"는 이 늙은 개가 인간에게 키워졌음을 암시하는데 버린 개에게 약간의 배려조차 해주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주인은 이 바닷가에 개를 버리고 배를 타고 가버렸으리라. 이 늙은 개는 "목줄을 풀지 못해"질질 끌고 다닌다. 이 '목줄'은 "너덜대는 희망처럼" 주인을 혹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함축하지만 늙은 개가 죽은 후에도 목에 걸려 있을 것이다. 눈곱 낀 늙은 개가 바라보는 "해 지는 바닷가"는 개의 버려진 노년기, 그 황혼녘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늙은 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목줄을 끌고 다니면서 바닷가를 절룩거리며 서성이거나 자신의 상처를 핥으며 황혼을 바라보는 일 뿐이다. 이 작품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는 개가 바라보는 붉은 하늘이라는 종결로, 우리 사회에서 방치된 노인문제를 환기하게 하며 생명에 대한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계간평 - 박성민

 

[출처] 『열린시학』2013, 가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