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리뷰

꽃과 나무에 사람이 산다 五讀悟讀 - 정희경/시조21 특집

heystar 2013. 12. 23. 14:09

 

 

 

 

당신도 이쯤에선 무릎을 꿇어야한다  

권세나 황금 앞에 비굴한 적 없다 해도

화야산 페미니스트, 얼레지를 만나려면

              

저항의 깃발인양 펼쳐 든 치맛자락   

발칙한 들꽃이라 낭설 분분하지만

허투루 밟지 마시라, 사랑도 모르면서            

  

삼동의 긴 어둠과 야만의 눈보라에   

황진이, 허난설헌, 나혜석, 스러진 자리

보아라! 제 몸의 신열로 봄을 점화하는 저,

                                                                     -박해성 「야생화 출사기」 전문, 《시조21》 2013 여름호

 

  두 주먹에 힘이 절로 간다. 척박한 땅에서 여자라는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고 간 그녀들에게 고개 숙인다. 시인은 얼레지를 ‘황진이, 허난설헌, 나혜석’과 연결하여 그녀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박수를 보낸다. 얼레지는 피어나기까지 7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땅속에서 기다린다. ‘권세’나 ‘황금’보다도 더 가치있는 그들의 ‘치맛자락’은 ‘저항의 깃발’이다. ‘제 몸의 신열’로 ‘봄을 점화 하는’ 저 꽃들 황홀하다.  

  활달한 문체와 힘찬 시어 선택으로 작품 전체를 힘있게 이끌고 있다. 또한 쉼표와 느낌표를 적절한 위치에 놓음으로써 표현의 묘미를 배가 시킨다. ‘꿇어야한다’ ‘밟지 마시라’라는 직설적인 화법도 이 작품을 더 당당하게 만든다. 힘든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갔던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 무릎 꿇고 화야산을 오르고 싶다.

                                                                       [출처] 계간 『시조21』  - 글쓴이; 정희경. 

정희경시인

대구 출생. 2008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2010년 《서정과현실》 신인작품상 당선.

제4회 가람시조문학신인상 수상. 영언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