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지척 - 마경덕

heystar 2013. 12. 17. 00:29

 

      지척咫尺

 

                      마 경 덕

 


지금 흰 꽃과 붉은 꽃의 경계는 지척이다
마주보며 달리는 화환 두 개, 도착지가 다른
두 개의 출발
삶과 죽음이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가는 중이다


축하의 메시지를 잔뜩 꽂은 결혼식화환
설렘으로 화사하게 물들었다 출발을 알리는
첫발자국, 사거리에서 잠시 멈춘 웃음이 축포처럼 팡팡 터진다


누군가의 조문을 받으려고 소복으로 갈아입은 국화꽃화환
울음이 고인 흰빛에서 단호한 뒷모습을 보았다
붉은 빛은 언제까지 가능한가
화려한 무늬도 결국 흰빛으로 탈색되었다


처음과 끝,
왼손과 오른 손의 관계처럼 어깨가 닿을 듯한 거리
멀고 아득해 손이 닿지 않는다. 하지만
지척이란 코앞이다
찰나에 죽음 쪽으로 돌아눕는 삶도 보았다


저 위험한 동승, 알고 보면
두 개의 얼굴로 우리는 날마다 삶에 편승하는 것
긴 여정의 종착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차도 유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그저 앞서가는 시간을 따라 무작정 달리는 것이다


- 《시인정신》(2013년 봄호) 

1954년 전남 여수에서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신발論』『글로브 중독자』.


현재; 시마을 문예대학 강사/ 다시올문학 편집위원/ 우리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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