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해성
과일이 있는 정물화
詩/박 해 성
사과를 먹고 잠에 빠질 나는 백설공주
백설, 백설, 흩날리는 눈발 뒤에 숨어서
3월이 다가오고 있어, 변장한 계모처럼
털목도리 둘둘 감고 과일을 파는 노파
주문 외듯 빌고 닦아 보석같이 반짝이는
저것은 붉은 여의주, 어느 잠룡이 잃어버린
불을 뿜고 승천하다 구슬을 떨어트려
인간 속에 갇혀버린 이무기를 닮았는지
온전한 내면의 응시로 무릎이 귀에 닿는
저 순한 마귀할멈 의붓딸도 몰라보고
졸다말다 둘러보는 지상의 저물 무렵
왕자님 그냥 스쳐가네, 유감스레 무사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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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는 평을 불식시키고 싶다는 주제넘은 생각으로, 기존의 텍스트를 해체, 원본의 파편화된 이미지를 재구성하는(자유시에서는 흔한 경우지만) 소위 환상적 리얼리즘의 선구자인 보르헤스 흉내를 내보기로 맘먹었지요.
처음부터 너무 뻔한 길은 버리기로 작정하고 출발했건만 어쩌죠, 과일을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노파를 보는 순간, 복효근의 시 <쟁반탑>의 영향인지 전자동으로 ‘사과탑’이 먼저 떠오르고 그렇고 그런 연민의 상투어가 앞서는 것을… 아니다, 아니다하면서 나도 모르게 시조적 문법에 길들여졌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네요.
그럴수록 “정녕 변해야 살아남는다.” - 도리질을 하고는
눈 씻고 사과를 다시 보며 간신히 <백설공주>를 불러내고 봄눈 오는 3월 날씨는 시샘 많은 ‘계모’ 라는 연상과 함께 사과 파는 노파는 ‘변장한 계모’로 연결했지요, 동화를 원본대로 따라가면 결말이 뻔할 터, 궁리 끝에 반짝이는 사과를 설화적 이미지인 ‘여의주’로 치환하고 서사의 줄기를 비트느라 며칠 더 끙끙거렸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불을 뿜어대느라 용이 떨어트린 붉은 여의주를 먹는 셈이죠. 보물을 잃어버린 용은 그 형벌로 인간 속에 갇혀 살게 되었다는 - 그래서 인간은 ‘용 못 된 이무기’처럼 가끔은 괴물이 된다는 이상요상한 취중진담인데,
독이 든 사과가 없으니 백설공주는 잠들지 않을 것이고 백마 탄 왕자님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그래서 별일 없이 지루한 소시민의 일상이지만 누구나 백설공주를 꿈꾸고 더러는 계모처럼 증오의 대상을 제거하는 상상으로 카타르시스를 획득하기도 하는데요.
여의주를 얻어 벼락출세하거나 부자가 되는 꿈은 현실을 망각할수록 신나겠지요.
마술적 속임수 같다고요? 그러나 시의 메시지가 항상 슬프거나 융숭 깊고 심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시는 종교가 아니랍니다.” - 박해성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