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해성
바리데기*, 그 후
詩/ 박 해 성
한때는 판잣집에 우리 누이 산 적 있지
아흔아홉 번 망설이다 여우로 변신하신
기지촌 바리공주님, 제석천의 분꽃 같은
열여덟 꽃가슴을 쥐어뜯던 빨간 손톱
오매불망 피붙이들 허기진 눈망울에
불나비, 불나비같이 불꽃 속에 던진 몸을
똬리 튼 독사처럼 밤은 또 왜 그리 긴지
쓸개도 없는 별들 헬로 헬로 반짝이면
휘영청, 계수나무에 목매달고 싶었다는데
고추 당초 곶감보다 주홍글씨 더 무서워
곱슬머리 늑대 따라 울며 바다 건넜다는
이녁의 헌신짝이여, 단물 빠진 츄잉껌이여!
* 한국 구비문학의 서사무가에 등장하는 효녀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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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크고 작은 굿판이 많았다. 무당이 시퍼런 작두날에 맨발로 올라설 때면 내 발바닥이 서늘해져 진저리쳤다. 그들이 흐느끼며 巫歌를 부르면 나도 덩달아 흑흑 울기도하는 등 밤 새워 굿 구경을 다니며 아이는 성장했다.
그 때문인지 대학시절 국문학 전공시간에 만난 서사무가 ‘바리데기’에 나는 쉽게 매료되었다.
언젠가 매스컴에서 용산, 의정부, 송정리 등 대한민국의 ‘기지촌’을 떠나 미국으로 간 여인들을 추적 취재한 걸 본적이 있다. (‘6. 25 전쟁’이 휴전되자 대한민국은 극심한 기아상태에 허덕였단다. 허기에 희생된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던 그 때, 무능한 가장들 대신 여린 몸뚱이 하나를 밑천으로 우리의 딸들이 가난한 식솔들을 부양했다는데…) 그들이 바로 우리시대의 바리데기 - ‘양공주’였다.
물론 그들 중 몇몇 성공한 사례도 있었지만 대개는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견디고 살았으며 더러는 일찍 세상을 떠났거나 행방불명되었다고도 했다. 자신이 부쳐준 등록금으로 공부해서 출세한 남동생 가족이 모른 척 외면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노파가 주름진 얼굴을 갈퀴손으로 가리고 흐느낀다.
헌신짝처럼 구겨진 야윈 어깨가 오래도록 들썩인다.
‘바리데기’의 후예인 우리가, 지금 돼지같이 배부른 이 시대가 우리의 누이들을 씹던 껌처럼 단물 다 빨아먹고 뱉어버렸다는 사실 앞에 나는 무릎을 꿇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