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포엠

다시, 봄날

heystar 2012. 7. 3. 15:21

 

                                                                                                                                                          사진/박해성

 

 

    다시, 봄날

      - 수목장

 

                 詩/박 해 성

 

 

너를 묻은 가슴에 무례한 봄이 쳐들어와

진달래 붉은 염문 산허리 확 달구는 날

꽃바람,

꽃길에 앉아

꽃잎이나 잘근대다

 

첩첩 막막 적막강산 꽃 핀들 무얼 하나?

 

이냥 깜빡 잠든 사이 전생으로 돌아가

 

한 그루 나무가 되리, 안식의 요람이 되리

 

내 그늘에 누운 그대 생시처럼 평온하고

그로 인해 심줄 푸른 이내 몸엔 새순 돋아

먼 절집

범종 소리가

나이테에 감겼으면…

 

*********************************************

 

 

   서른 권의 가계부로 남은 여자가 있다. 외동이인 나의 친구이자 형제자매이며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신뢰할만한 절대 아군이었던 K,

   초등학교 시절, 말수 적고 비쩍 마른 나에게 사내아이들이 “빼빼야”하고 놀리면 신발을 벗어 던지던 그 애 - 난 K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중학교도 같은 학교로 진학해서 화장실까지 늘 손을 꼭 잡고 붙어 다녔다.

 

   K는 열일곱에 은행 일을 시작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로 전학했다. 이제 생각하니 홀어머니 대신 소녀가장이 된 것도 모르고 그때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지 아마? 그 후로 십 수 년이 넘도록 (그녀의 남동생이 학업을 마칠 때까지) K의 가장노릇은 지속되었다. 물론 가까운 친구들 중에서 결혼도 제일 늦었다.

 

   그녀가 입원했다는 소식에 서둘러 병원을 찾았을 때 K는 침대에 앉아 웃으며 나를 반겼다. 병명은 별거 아니라고 했다. 늘 그랬듯이 나는 눈치도 없이 온종일 붙어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남편 흉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옛날 얘기까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K는 떠나고 나는 남았다.

 

   그 연약한 체구에다 아이를 들쳐 업고 입덧하는 나를 위해 게장을 담아 버스를 갈아타며 들고 왔던 그녀, 내가 남편과 다투고 한밤중에 불쑥 찾아가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더운 밥상을 차려주던 그녀, “멋지다”는 한마디에 새로 산 제 지갑을 내 화장대 위에 슬며시 두고 간 그녀, 유난히 추위 타는 내게 밤 새워 털실로 올올이 짠 빨간 조끼를 입히고 친정엄마처럼 미소 짓던 그녀, 꽃이 예쁘다고 분양해 준 공작선인장에 춘란 등등……

 

   아아, 다시 눈물이 앞을 가려 이쯤에서 글을 접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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