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해성
거위털파카
詩/박 해 성
울음이 다 삭제된 거위의 깃털을 산다
적멸의 가벼움은 3개월 무이자할부,
온 세상 눈보라에도 보온 방수 끄떡없는
미궁 속으로 빨려든 비명의 무게하며
기다란 모가지에 꽥 꽥 꽥 고여 있던
욕망의 질량에 따라 시세가 매겨질 뿐
아무도 관심 없다, 얼어터진 그 맨발은
한때는 부리 끝에 꽃물 들어 붉었던가?
단 한 장 남은 달력에 가압류된 동백처럼
나는 몹시 안녕하다, 영하의 지상에서
숱한 죽음이 키운 날개 잃은 슬픈 새
지구별 난생의 후예, 뒤뚱뒤뚱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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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를 키운 건 8할이 죽음이다. 이 세상 숱한 주검을 먹고, 입고, 신고, 두르고 이 한 몸 굳건히 유지하며 여기까지 왔다. 살아갈수록 나도 모르게 죄업의 퇴적층이 자꾸 두터워지는데…
벼르고 별러 세일기간에 거위털 코트를 장만했다. 30% 할인에다 무이자할부까지, 이게 웬 떡? 완전 수지맞은 기분이다. 앗싸~~~
덕분에 지난겨울은 추운 줄 모르고 잘 지냈다. 어둠을 응시하며 일출을 기다리던 바닷바람 속에서도, 한라산의 눈보라 속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던 오지의 어느 산자락에서도 내 몸을 포근히 감싸주던 거위의 온기, 나는 그 깃털 옷을 입고 감히 새로운 세상에 도전했으며 가끔은 눈밭에 굴러도 무사했다. 철없이도 일상탈출을 꿈꾸며 퇴화한 날개를 퍼덕이던 설원에서 나는 네가 있어 안녕했다고 전하고 싶다.
나는 죽어 누구를 포근하게 감싸줄 것인가? 곰곰 고민하다가 이런, 엉뚱하기는!
박혁거세를 비롯하여 석탈해·김알지·수로왕·동명왕 등 우리의 선조가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면 나 역시 난생卵生의 후예가 아닌가, 그렇다면 거위와 나는 동족이 되는 셈? 추론이 여기에 이르자 거위가 나인지 내가 거위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거라, 내 참 기가 막혀^^;;;
그렇다, 동병상련 - 우리는 나는 법을 잊어버린 가여운 새 - 제 가슴 털을 뽑아 나의 가슴을 데워주며 겨우내 영하의 날씨에도 마다않고 동행하는 그가 새삼 살가운 살붙이처럼 느껴져 콧등이 시큰하다.
누구 닮아 그런지 나는 오늘따라 더욱 뒤뚱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