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해성
그 여자의 집
詩/박 해 성
*
허공을 걷던 그녀 리모델링 중입니다, 천근 집착 들어내고 잔 시름 걷어낸 자리
해묵은 눈물자국이 채 마르지 않았네요
*
환멸에 찌든 싱크대 요령껏 떼어내고 살갑게 다루세요, 척추가 휘어진 소파
누구나 거듭나려면 버릴 게 많은 법이래요
피멍을 물고 있는 대못도 빼 버려야죠,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벽을 향해 돌진하다
금이 간 세상에 꽂혀 속절없이 녹슬어가는
심줄 푸른 햇살 엮어 창가에 드리우고 카나리아 새장쯤은 이제 열어둘까 해요
어쩌면 날갯짓마저 잊은 건 아닐는지…
뚝심 좋은 책상일랑 먼지나 털면 되겠죠? 불면의 뜰에 숨은 포스트모던 고양이가
얼녹은 경락에 맺힌 꽃망울을 토하는 봄봄
- 박해성 시집 『비빔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에서
***********************************************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세상 광기 어린 속도전에 쫓기다 문득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허둥대며 석양 길로 내몰리고 있었다. 퇴색한 희망의 단어들, 구겨진 젊음의 눈빛,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자아의 호명, 실존의 이름으로 잃어버린 꿈과 낭만, 등이 휘는 삶의 무게…
나의 문학은 이러한 허망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며 지천명쯤에 조용히 첫 장을 열었을 게다. 다시 시집을 들자 미친 듯 몰입하기 시작했다. 뒤 늦게 발 딛은 신천지에서 나는 밥 먹는 시간을 잊었으며 가끔은 잠자는 것도 잊었던 것 같다.
제때에 트랙을 출발한 나와 비슷한 연배들은 이미 까마득히 가시거리를 벗어 난 뒤였다. 관중도 모두 돌아가 버린 텅 빈 경기장을 나 혼자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갈채나 환호는 없었지만 부끄럽지도 않았다.
보편적인 문학이 양으로 승부하는 장르가 아니라 질로 평가받아 마땅한 가장 인간적인 예술이라면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젊음과 늙음은 특별하다거나 열등한 것의 대명사가 아니다. 다만 다를 뿐이다.
하여 나는 지금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해묵은 아집이나 편견의 벽을 부수고 녹이 슨 애증도 들어내려 한다. 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먼지를 툭툭 털고 다시 봄을 기다리며 고양이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밤, 날개가 돋으려나? 나도 누구처럼 자꾸만 겨드랑이가 근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