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소
이 장 욱
손가락은 외로움을 위해 팔고
귀는 죄책감을 위해 팔았다.
코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팔았으며
흰 치아는 한 번에 한 개씩
오해를 위해 팔았다.
나는 습관이 없고
냉혈한의 표정이 없고
옷걸이에 걸리지도 않는다.
누가 나를 입을 수 있나.
악수를 하거나
이어달리기는?
나는 열심히 트랙을 달렸다.
검은 서류가방을 든 채 중요한 협상을 진행하고
밤의 쇼윈도우에 서서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았다.
악수는 할 수 없겠지만
이미 정해진 자세로
긴 목과
굳은 어깨로
당신이 밤의 상점을 지나갔다.
헤이,
내가 당신을 부르자 당신이 고개를 돌렸다.
캄캄하게 뚫린 당신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는 순간,
아마도 우리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
아마도 내가
당신의 그림자였던 적이.
당신이 나의 손과
발목
그리고 얼굴이었던 적이.
- 이장욱 시집 『생년월일』(창비) 에서
- 1968년 서울 출생.
- 고려대 노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 1994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 평론집; 『혁명과 모더니즘』『나의 우울한 모던 보이 - 이장욱의 현대시 읽기』.
- 수상; 2005년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로 제3회 '문학수첩작가상'
2010년 제3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賞' 수상.
- 현재 '천몽' 동인이며 조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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