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鳳凰山)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676년(문무왕 16)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삼국유사≫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어느 신도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佛事)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그 뒤 의상이 귀국하는 길에 선묘는 몸을 바다에 던져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의상이 화엄의 대교(大敎)를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500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로 하였다 한다. 지금도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선묘용이 변화했던 바위라고 전한다.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겉으로 보기에는 돌 위에 살짝 얹힌 듯한데 돌 밑으로 실이 걸리지 않고 통과한다니 믿을 수 밖에... 이를 증명하듯 浮石이라 새겨져있다.
국보 제18호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보물치고는 소박한 외양이시다. 왼편 뒷쪽으로 돌아가면 뜬돌(부석)이 있는 곳이다.
처마와 들보, 기둥 어디에도 단청 없이 자연 나무결 그대로다. 오직 현판의 테두리에만 푸른 채색이 둘러져 있을 뿐.
단청없는 소박한 처마끝 - 비상의 몸짓조차 단아하다.
무량수전의 뒷편 - 배흘림기둥이 즐비하다. 여기서 이 기둥들이 장식용이 아나라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건축공법임을 알 수 있다.
무량수전과 마주한 안양루 -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집으로서 누각의 처마밑이 목조각처럼 섬세하고 아름답다.
안양루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국보 제 17호 석등이 서있다. 균형잡힌 몸매가 아름답다. (옆에 보이는 지붕이 안양루 지붕이다)
동판에 새겨진 석등에 대한 안내문은 가까이서도 잘 알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요롷게 탑의 윗부분만 클로즈 업 - 팔각지붕의 곡선과 사방에 새겨진 수호신? 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석등의 기단부 - 비록 검버섯이 피었지만 키큰 석등을 충분히 안정감있게 떠받들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연꽃 문양이 그대로 살아있다.
석등 옆에 있는 반듯한 돌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 - 예사롭지 않은 형태를 지녔기에 한 컷 찍었다.
안양루 누각 마루 밑이다. 사람들은 이 마루밑을 통해 좁은 계단을 올라야 석등을 만날 수 있다.
극락으로 통하는 좁은 문이 이럴까 - 생각하기도 하고 ^^*
안양루를 받치고 있는 통나무 기둥들 -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조금은 피곤한 것도 같은데... 어떤 것은 인간의 얼굴을 닮았다.
내려다보면 노오란 은행잎과 차분한 절집의 잿빛 기와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안양루 근처에서 목어를 만났다. 누각 이름은 생각이 안나네^^;;;
허공에 매달려서 이제 바다는 잊으신 듯..... 밸조차 다 빼놓고는^^
소리는 소리를 부르는걸까, 소리나는 것들끼리 동병상린 - 이웃하고
넉넉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절집은 거기 그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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