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
이 윤 설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었어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 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좌ㅡ악 찢은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닭발 같아서 뼈째 씹어야 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 있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것의 비린 나무 냄새.
살아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아니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 먹으러 저 숲으로 가요.
<2006년 신춘문예 당선시집>(문학세계사) 에서 -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1969년 경기도 이천 출생.
명지대 철학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2005년 국립극장 신작희곡 페스티벌 당선.
2005년 거창국제연극제 장막희곡공모 대상.
2006년 조선일보 ·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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