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소녀
김박은경
계단 오를 때마다 파이를 생각해
부푸는 몸 위에 박아 버린 교복 치마 찢기는 소리 명랑해
끝을 알 수 없어 매력적인 게 파이라면
끝을 알 수 없는 삶도 파이겠지
교복이라 뜨겁게 팔려 미적지근하고 비린 대가(代價)를 들고
패밀리 마트 갈까 패밀리는 안 팔아요, 나는 뭐랑 패밀리 할까
삼각 김밥은 어떨까 딸기우유 팬티스타킹 레종과 콘돔은 어떨까
포장을 풀자마자 삼각은 풀어져
딸기 없이도 딸기 맛은 완벽해
뾰족한 딸기밭에 먹구름 폭풍우
나머지 일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래
검정 비닐봉지 부풀어 날아도 나비 나비
어른들은 모두 철학하는 인간,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 합니다*
직전과 직후 중 어느 쪽이 좋을까요
어느 쪽이 파이로 자라날까요
대답 없을 때 영원은 자란다
어제의 화장에 덧칠한 오늘의 화장
그 위에 어떤 문신 할까 파란만장은 새로울까
문양은 점점 더 복잡해져요
날고 싶어 날마다 날고 싶어
날아다니는 씨앗을 얼마나 삼킨 걸까
욕할 때마다 구토할 때마다 꽃들이 튀어나와
이미 꽃밭이 된 걸까요, 나는
점점 더 침묵입니다
* 비트겐슈타인 -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출처 ] 계간 『용인문학』 2011년 가을호에서
서울 출생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2002년 <시와 반시> 등단.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문학의 전당,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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