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명중 - 박해람

heystar 2011. 9. 30. 10:16

        명중

 

                       박 해 람

 

 

사내의 울퉁한 팔뚝에

한 시절의 순정이 명중되어 있다

그러나 그 무엇에다 명중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것

저 하트 모양에 박혀 있는 화살처럼

깊이 박힌 다음에는 명중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이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지금은 뒤쪽에서 덜 풀린 힘이 부르르 떨고 있는

여진의 날들이라는 것이지

또한 허공으로 날아간 것들

그 떠난 자리는 흔적이 없다는 것이지

다만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는

누구나 명중되어 있다는 것이지

 

기마족(騎馬族)들에게는 적에게 허점을 보일 때가 화살을 날릴 때란다

그 무엇을 과녁으로 삼을 때가

가장 방해받기 쉬운 때라는 것이지

숨 한 번 고르는 시간이

영원히 숨을 끊을 수 있을 때라는 것이지

내 몸이 과녁이 되는 때라는 것이지

 

아직 제대로 된 들숨 한 번 들이마시지 못한 시절인데

명중의 시절이 내게로 와 박히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부르르 떨리는 때가 있다

아직 깨끗한 과녁이 가끔 두렵다

그러나 이 부르르 떨리는 것들, 고통은 늘 뒤쪽에 있다는 것이지

그러다가 더 이상 떨림도 없을 때가

내가 제대로 된 과녁이 되는 때라는 것이지

사내의 울퉁한 팔뚝에 박힌 그 화살처럼

누군가의 마음에서 푸릇하 사라져간다는 것이지.

 

                                                            <문학사상> 2004년 8월호에서

1968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8년 《문학사상》등단.

시집;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 (랜덤하우스중앙,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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