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미학
리 산
바야흐로 꽃피는 봄날이었을 것이네
전란을 피해 변방을 떠돌던 두보가 권주가 한 수를 지어주고 얻은 진달래화전을
식솔들과 나누어 먹네
물랑루즈를 나온 로트렉이 비 오는 몽마르트르성당 앞에서 무희의 초상과 바꾼
한 병의 포도주를 병째 마시고 있을 때
거리의 사당패도 못 되고 황실의 악사도 되지 못한 백결선생이여, 거문고를 뜯어
방아를 찧네 빈 방아를 다 찧고 나면 또 무엇을 하나
레이몬드 카버氏의 장점은 땅, 권총소리가 날 것 같은 장면에서 그런데, 라고 말
하는 것, 아슬아슬 경계를 피해가는 것 그걸 미니멀리즘이라고 한다지만
언젠가 당신과 함께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에서도 線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지,
마음을 끄는 한 여자의 발밑에 선을 죽 긋던 남자
가령 난 구부러짐이 심한 비탈길을 운전하게 될 땐 자주 선을 넘어, 외곽의 도로
일 뿐이고 어쩔 순 없지
그런데 그 난리법석을 넘어 두보의 시는 어떻게 후대로 전해졌을까 궁금해지는
바야흐로 꽃 지는 봄날이네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이백의 술은 강물 한 통에 몇 줌의 달빛을 달여 만든 것
달은 구름에 갇혀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배꽃술이나 한 통 마시고 싶어
후추술 창포술은 어떨까
어지러이 책장에 차고 넘치는 책들을 모아
祭를 지내듯
신묘한 맛의 술 한통으로나 바꾸었으면 좋겠네
봄날이 다 가도록 배꽃술이나 치며
봄날이 다 오도록 배꽃술이나 담그며
그냥 그랬으면 좋겠네
계간 『시와 표현』 2011년 봄호(창간호)
2006년《시안》 신인상에〈장미꽃 무늬가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진단서〉 외 9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
현재 '센티멘털 노동자동맹' 동인으로 활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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