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풍장 1 - 황동규

heystar 2011. 8. 2. 19:07

  풍장(風葬) 1

 

 

                     황 동 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시집 『풍장(風葬)』(문학과지성사, 1995) 중에서

1938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 영문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  영국  에딘버러  대학  등에수학.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어떤 개인 날』,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풍장』,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등

산문집 『겨울 노래』, 『젖은 손으로  돌아보라』 등을 펴냄.

수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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