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뱀의 문장紋章을 쓰는 가계家系 -김유석

heystar 2023. 2. 7. 19:55

뱀의 문장紋章을 쓰는 가계家系

                            김유석

​​

 

물려받은 건 배를 깔고 기는 법

소리 없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버릇, 그리고

소름이 돋을 만큼의 징그러움 뿐이었다.

 

유전이라 이르지 마시기를, 그러니까

독은 후천적으로 생성된 내성의 결과물이다.

뭔가 왜곡된 듯한 몸

뭔가 제어된 듯한 자세로 나아가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삼투되어 고이기 시작한 그것,

대가리를 치들게 하고

찢어질듯 아가리가 벌어지게 하고

똬리를 틀고 웅크릴 줄 알게 만드는 그것은

자학의 증거이자

고통이 없으면 감각도 무뎌지는 생의

마약과 같은 것이다. 먹이를 물어 삼킬 때마다

함께 밀어 넣어야 하는 스스로의 독에

퍼렇게 중독된 몸 어디, 한때

세상을 다스렸던 파충爬蟲의 위엄은 흔적조차 없고

진화와 퇴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듯한 형체로

누대에 걸쳐 무고한 죄질에 시달려야 하는

 

나는 난태생卵胎生, 나는 곡선으로 나아가고

제 몸을 쥐어트는 가학적인 문양을 둘렀고

그리고, 나의 피는 차갑다.

 

[출처] 웹진 『시인광장』 2014년 4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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