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래를 위하여
정일근
불쑥,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면
당신의 전생은 고래다
나에게 고래는 사랑의 이음동의어
고래와 사랑은 바다를 살아 떠도는 같은 포유류여서
젖이 퉁퉁 붓는 그리움으로 막막해질 때마다
불쑥불쑥, 수평선 위로 제 머리를 내미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고래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당신이 본 것은 언제나 빙산의 일각
누구도 사랑의 모두를 꺼내 보여주지 않듯
고래도 결코 전부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한 순간 환호처럼 고래는 바다 위로 솟구치고
시속 35노트의 쾌속선으로 고래를 따라 달려가지만
이내 바다 깊숙이 숨어버린 거대한 사랑을
바다에서 살다 육지로 진화해 온
시인의 푸른 휘파람으로는 다시 불러낼수 없어
저기, 고래! 라고 외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
고독한 사람은 육지에 살다 바다로 다시 퇴화해가고
그 이유를 사랑한 것이 내게 슬픔이란 말이 되었다
바다 아래서 고래가 몸으로 쓴 편지가
가끔 투명한 블루로 찾아오지만
빙하기 부근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함께 잃어버려
불쑥,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다 아득한 밑바닥 같은 곳에서
소금 눈물이 펑펑 솟구친다면
당신도 고래다
보고 싶다, 는 그 말이 고래다
그립다, 는 그 말이 고래다
- 출처; 『한국 동서문학』 2021, 봄호에서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년의 뜰 9 -가시 -허영자 (0) | 2022.03.10 |
---|---|
반성적 당근 - 안차애 (0) | 2021.12.15 |
달이 걸어오는 밤 (0) | 2020.10.14 |
밥그릇 경전 (0) | 2020.10.03 |
밤의 주유소 (0) | 2020.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