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시

우루무치에서 석양까지 달려

heystar 2020. 12. 26. 11:36

우루무치에서 석양까지 달려

 

                               박해성

 

 

 

파미르고원 접경에 도착했다

흉노공주와 이리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위구르족의 자치구,

총을 멘 군인들과 붉은 완장들이 앞을 가로 막는다

몽둥이가 늘어선 검색대를 벌벌 통과한다, 여권을 코앞에

대조하고 신발까지 벗기는 황당한, 무례한, 불쾌한,

다시는 오지말자, 주먹을 꽉 쥐었지만 천산산맥 자락

해발 2000m 호수 앞에서 불온한 결기는 무장해제 당한다

 

비단 같은 운해를 허리에 두른 설산 아래 늙은 가이드의

구전설화가 신의 치마폭처럼 수면에 일렁이는 사리무호,

해맑은 이마에 물방울이 맺힌 야생화가 함부로 눈물겨운데

당신은 내일 아침 떠난다, 떠나겠다 말한다

들은 듯 못 들은 듯 나는 마른 살구만 씹는다

 

낡은 파오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양고기를 굽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새도록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

는개비는 내리고 잠자리는 눅눅하고

꿈자리는 발이 푹푹 빠지고

이국의 무녀가 알비노 염소 피에 절인 도마뱀 눈알과

전갈의 혓바닥, 지네 발톱을 갈아 마구 휘갈긴 부적을 내민다

언뜻 퇴마록에서 본 듯도 한 저 발칙한, 저 요망한

 

으슬으슬 눈을 뜨니 덜렁 혼자다, 춥다, 뼈가 시리다

속울음처럼 들려오는 빗소리, 아아 빗소리,

이 비가 그치면 나 또한 떠나리라

남염부주 대궐 북쪽 붉은 산으로 가리라

 

화답인 듯 천둥 친다, 하늘에 쩍쩍 금이 가기 시작한다

 

 

 

-출처; 박해성 시집『우주로 가는 포차』2020, 지혜

'박해성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이  (0) 2021.01.18
좀머 씨는 행복하다  (0) 2020.12.29
I am a girl.  (0) 2020.12.17
손톱을 깎다  (0) 2018.08.21
투루판 가는 길  (0) 2018.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