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이상의 거울 생각 - 구애영

heystar 2018. 11. 15. 07:42

      이상의 거울 생각

 

                                      구애영

 

 

  거울은 스스로 제 표정을 절대 본 적 없소

  단단한 요새,

  성채 일뿐

 

  평면의 몸이 유연하지도 않고

  한 번도 누군가를 안아준 적도 없소

  그런데 그 아집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소

  가령 곁방에 걸린 손거울이라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30년째 당신의 영정사진을 밀어내고 있소

  아무런 느낌 없는 천성

  어느새 나는 없고 내 눈빛만 그 벽에 갇혀버렸소

 

  그러니 창문을 열어놓아도 소용없소

  어쩌다 장자의 나비라도 옆구리를 뚫어 머무르면 좋으련만

  그런 휴지의 풍경은 가당치도 않소

  우리의 관계는 끝내 움직일 수 없소

  그냥 지척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실사해주면 그만이오

 

  더 견고한 결단과 더 창백한 대화 하나만을 거울 속의 배후로

걸어두면 그만이오

  그러나 경대 밖에서

  한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를 거울은 들을 수밖에 없소

  어떤 면경은 눈보다 귀가 더 발달했으니까

 

  * 중국 전국시대의 송나라 철학자, 산문가.

 

                            - 출처; 『열린시학』2017, 가을호

시집; 『모서리 이미지』『호루라기 둥근 소리』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당 약전略傳- 관효환  (0) 2018.12.21
달빛 사용 설명서 - 홍일표  (0) 2018.11.28
종이 상자 - 김경인  (0) 2018.11.04
사과와 함께 - 배영옥  (0) 2018.10.09
영옥 - 이경림  (0) 2018.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