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거울 생각
구애영
거울은 스스로 제 표정을 절대 본 적 없소
단단한 요새,
성채 일뿐
평면의 몸이 유연하지도 않고
한 번도 누군가를 안아준 적도 없소
그런데 그 아집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소
가령 곁방에 걸린 손거울이라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30년째 당신의 영정사진을 밀어내고 있소
아무런 느낌 없는 천성
어느새 나는 없고 내 눈빛만 그 벽에 갇혀버렸소
그러니 창문을 열어놓아도 소용없소
어쩌다 장자*의 나비라도 옆구리를 뚫어 머무르면 좋으련만
그런 휴지의 풍경은 가당치도 않소
우리의 관계는 끝내 움직일 수 없소
그냥 지척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실사해주면 그만이오
더 견고한 결단과 더 창백한 대화 하나만을 거울 속의 배후로
걸어두면 그만이오
그러나 경대 밖에서
한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를 거울은 들을 수밖에 없소
어떤 면경은 눈보다 귀가 더 발달했으니까
* 중국 전국시대의 송나라 철학자, 산문가.
- 출처; 『열린시학』2017, 가을호
시집; 『모서리 이미지』『호루라기 둥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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