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수상작

유리의 존재 - 김행숙

heystar 2016. 11. 3. 12:01

       유리의 존재

                          김행숙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았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 줘. 안 그러

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오늘에

야 비로소 나는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

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 『문학동네』 2016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