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제 7회 천강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현고수
박형권
나는 북을 걸어둔 느티나무다
몇 발자국 뒤의 생가에서 나와 둥두둥! 북을 두드리는
마흔 살 선비다
그 선비의 붉은 철릭이어서 뿌듯하다
육백 년을 살았어도 불혹의 깊은 속을 다 읽지는 못하지만
선비와 나는 한 몸이다
나는 성리학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되었고
별시문과에 뽑혔으나 임금의 비위를 거스른 문장이라
합격이 취소되었다
첫 줄기의 생장점이 꺾인 것이다
그리하여 잎눈과 꽃눈을 내지 않았다
한양 쪽으로는 이파리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나의 북소리는 주경야독에서 나왔고 은둔에서 나왔다
임진년 허술했던 봄, 임금은 벌벌 떨고 관군은 도망할 때
나는 스스로 의병을 일으켰다
비루하고 인색하다고 입에 오르내린 사재를 털어
천강홍의장군이라는 깃발 아래로 의병들을 불러들였다
나는 알았다
북은 스스로 운다는 것을
정암진에서 붉은 철릭을 입고
이천의 의병으로 이만의 왜군을 수장시킬 때도
관군은 도망치고 시기 질투하였다
나는 날랜 병사를 불러 핏빛 옷을 입혔다
홍의장군은 어디에나 있었다
임금이 여러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잠깐 하다가 손을 놓았다
그건 모두 어린애를 홀리는 단물과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패랭이 장사를 하며 솔잎을 먹으며 출사를 거절했다
모든 것이 북소리로 시작되었다
마침내 오늘에 와서 다시 북을 건다
명예롭게 남고 싶은 백성들은 누구라도 와서 두드려라
오늘 밤 바람이 몹시 차다
너희를 덮을만큼 잎을 떨어뜨린다
따뜻한가?
-출처; 『2016, 제 7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
1961년 부산출생.
경남대학교 사학과 졸업.
2006년 현대시학 등단.
수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수주문학상. 한국안데르센상, 201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시집 『우두커니(실천문학)』 『전당포는 항구다(창비)』 『도축사 수첩(시산맥)』
장편동화 『돼지 오월이(낮은산)』, 『웃음공장(현북스)』 『메타세쿼이아 숲으로(현북스)』
청소년소설 『아버지의 알통(푸른책들)』.
현) 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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