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자見者의 편지*
최형심
오늘 양귀비꽃의 도시를 보았습니다. 발자국 다섯 개와 칸나의 지도 한 장 들고 사막을 지날 때였습니다. 구두를 벗어놓은 쪽으로 도착한 환절기가 고행의 후계자가 되어 지도 위에서 거짓말을 습득했습니다.
이 별에는 일곱 번 이별하는 여자가 미결서류들을 팔고 있습니다. 개찰구 너머 오래된 풍습 속으로 고양이는 늙어갑니다.
지난밤에는 불의 도둑과 잡담을 했습니다. 나와 혼잣말과 불, 그리고 건너편뿐이었습니다. 잡담은 불이 꺼질 때까지 이어졌고 다음날 아침 불의 도적은 시커먼 속내를 쏟아놓고 갔습니다. 고정관념을 팔러 다니는 야비한 장사치나 부를 걸 그랬습니다.
목 깊숙한 곳에서 사과가 열리는 소년을 알았을 때 사막의 샘엔 첫눈을 뜬 소금쟁이들과 착한 모래가 있었습니다. 낙타의 방울소리를 세는 사막의 직업을 수소문하고 있습니다. 견딜 수 없는 모자를 써야겠습니다.
여우에게 밤의 눈매를 빌려 헤어지는 시늉을 했습니다. 타인의 방향으로 저녁이 오고 양귀비꽃그늘에서 주머니처럼 깊어지는 백지를 팔았습니다.
대상의 행렬이 세련된 무릎을 다듬고 있습니다. 민무늬의 뿔을 가진 숟가락은 아름답습니다. 온순해지는 나의 넝마를 빱니다. 여름과 일요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눈이 멀 것 같습니다.
빈 병은 더욱 선명해지고 알약은 순수해졌습니다. 행려병자는 야자수를 닮은 눈썹을 머리맡에 두고 기다립니다. 나비들이 도둑떼처럼 몰려와 우물이 동쪽으로 깊어지기를. 나의 모세혈관은 모두 눈물샘 아래 고여 있습니다. 유랑극단이 낙타의 무덤을 팔고 다닙니다.
* 랭보 (Rimbaud)
- 월간 『현대시학』 2015년 12월호에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과정 수료.
2008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2009년 아동문예문학상 동화부문 수상.
2012년 한국소설신인상 수상.
2014년 제4회 시인광장 시작품상 수상.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
[출처] 웹진 시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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