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송찬호
폭설이 외딴 그집에 들이닥쳤다
짐안에 들어 선 폭설은
잠시 실내를 둘러보다가
거울 앞에 서서 양의 탈을 벗고
집주인 사내가 건네주는
뜨거운 화강암 돌 한잔을 마셨다
집주인 사내는 원체 말이 없는 자였다
젊은 날 책은 죽었고
피 묻은 칼은 연못에 던져져 흙으로 메워지고
지독한 사랑도 오래전 버짐나무를 따라 떠나갔다
폭설도 꼭 무언가를 다그치기 위해 찾아온 건 아니었다
지나가는 말로 사소한 질문 몇 개 던졌을 뿐,
예전에 이곳에 금광이 있지 않았소?
초록 낙타 시장이 서지 않았소?
여기에 시간의 폐허와 적막이 있지 않았소?
밖에 잠시 눈이 그쳤다
눈속에 파묻힌 자동차를 찾으러 간다며
폭설은 다시 거울 앞에서 그 흰 양의 탈을 쓰고 떠났다
그뿐이었다 세찬 바람에 현관문이 꽝, 하고 열렸다 닫혔다
- 『문학청춘』2014, 겨울호에서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 경북대 독문과 졸업.
-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6호에 〈금호강〉〈변비〉 등을 발표하며 등단.
- 시집;『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지성사, 1994)『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99)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2000) 등.
- 2008년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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