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3
허 연
국경을 넘으면 커피맛부터 바뀌는 법인데 이곳에선 공기의
밀도가 바뀐다. 긴장은 그렇게 왔다.
미친여자 하나가 민병대원들 사이를 뛰어다녔다. 그녀의 녹색
눈동자를 보며 제국을 지배했던 멋진 게임 캐릭터를 떠올렸다.
내가 짝사랑했던 캐릭터.
트럭에서 내려 모래 섞인 침을 뱉었다. 발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자꾸만 나를 속계에 주저앉혔다. 부치지 못한 엽서를 꺼내 읽었다.
(그곳을 생각하다 가방을 떨어뜨렸어. 나의 몽유도원, 거긴 너무나
멀어)
낯선 문자가 적힌 비닐봉지들이 파미르를 날아다녔고 멀리 아잔
소리가 들렸다. 신의 시간… 말라버린 사탕수수밭 어디선가 총소
리가 났다.
선과 악은 모두 배부른 짓이다. 폐유 깡통 널려있는 국경 검문소
칠흑 같은 까마귀들이 다스리는 구역, 숨을 쉬면 가슴이 타버릴 듯
뜨거웠다.
나는 재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 『현대문학』2015, 1월호에서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 피』(세계사, 1995),『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2012) 등,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1966년 서울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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