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로 가는 길
최문자
아침 7시
병실 밖이었어
눈이 와
떨어지고 허물어지면서
나는 누워서 수술실로 간다
폐 한쪽을 자른다고 해도
나는
가만히 있는 사람
가만히 실려 가는 사람
이동 침대 오른쪽으로 우르밤바 강물이 흐르고
계단식 돌밭에서
스윽스윽 옥수수 이파리가 몸을 비빈다
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여기가 죽음의 계단일까
아슬아슬한 이 계단을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가면
마추픽추를 뒤로하고
나는 가만히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
마추픽추를 버리고 잉카다리를 건너야 한다
문자도 기록도 없는 돌계단을 오르다 만난 통나무다리
내가 건너고 나서
아무도 못 쫓아오게
이 통나무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야 한다
수술실 문이 열린다
가파른 마추픽추 공중도시에 나는 드러눕고
수술 칼들은 부스스 눈을 뜬다
마추픽추 가려고 눈 오는 밤에는 책을 읽었죠
수억개의 돌들을 미리 사랑했죠
수술대였어
한 발을 들고 오를 때
눈이 와
나에게는 덩어리가 있고
너에게는 가루가 있는
옥수수 꺾다 추락한 잉카 농부처럼
나를 꺾어도
빙글빙글 돌다
나는 가만히 있는 사람
밤은 어디에 있지?
마추픽추 어느 계단에 나는 쓰러져 있지?
* 마추픽추 ; 페루, 잉카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가장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절벽에 기대 숨어있는 신비한 공중도시.
- 『현대시학』2016, 2월호에서
1947년 서울 출생.
-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대문학 박사.
- 1982년 《현대문학》등단.
- 시집;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 『울음소리 작아지다』,
『나무고아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 수상; 한성기문학상, 박두진문학상, 한국여성문학상.
- 협성대학교 문창과 교수, 同 대학 총장 역임.
- 현재 배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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