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마추픽추로 가는길 - 최문자

heystar 2016. 2. 14. 12:41


마추픽추*로 가는 길


                                 최문자



아침 7시

병실 밖이었어

눈이 와

떨어지고 허물어지면서


나는 누워서 수술실로 간다

폐 한쪽을 자른다고 해도

나는

가만히 있는 사람

가만히 실려 가는 사람

이동 침대 오른쪽으로 우르밤바 강물이 흐르고

계단식 돌밭에서

스윽스윽 옥수수 이파리가 몸을 비빈다


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여기가 죽음의 계단일까

아슬아슬한 이 계단을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가면

마추픽추를 뒤로하고

나는 가만히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는 사람

마추픽추를 버리고 잉카다리를 건너야 한다

문자도 기록도 없는 돌계단을 오르다 만난 통나무다리

내가 건너고 나서

아무도 못 쫓아오게

이 통나무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야 한다


수술실 문이 열린다

가파른 마추픽추 공중도시에 나는 드러눕고

수술 칼들은 부스스 눈을 뜬다


마추픽추 가려고 눈 오는 밤에는 책을 읽었죠

수억개의 돌들을 미리 사랑했죠


수술대였어

한 발을 들고 오를 때

눈이 와

나에게는 덩어리가 있고

너에게는 가루가 있는


옥수수 꺾다 추락한 잉카 농부처럼

나를 꺾어도

빙글빙글 돌다

                        나는 가만히 있는 사람


밤은 어디에 있지?

마추픽추 어느 계단에 나는 쓰러져 있지?



* 마추픽추 ; 페루, 잉카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

                 가장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절벽에 기대 숨어있는 신비한 공중도시.



                                                       - 『현대시학』2016, 2월호에서


1947년 서울 출생.

-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현대문학 박사.

- 1982년 《대문학》등단.

- 시집;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 『울음소리 작아지다』,

           『나무고아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 수상; 한성기문학상, 박두진문학상, 한국여성문학상.

- 협성대학교 문창과 교수, 同 대학 총장 역임.

- 현재 배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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