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산다
송찬호
그는 전쟁과 독재 시절의 과거에서 왔다
어느 장의사가 못질을 잘못한
대지의 관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헝클어진 머리
천 개의 밤을 보아버린 듯한 퀭한 눈
더구나 오래 씻지도 않은 것 같았다
검푸른 이념의 곰팡이가
보기 흉하게 온몸을 덮고 있었다
그는 가끔 누구와 이야기 하고 있는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어깨 위 허공으로
바나나와 사과를 건네기도 하였다
한참 거리를 쏘다니다가
쇼윈도우 앞에 이르러
자신의 어깨가 조금 기우뚱한 걸 알아챈 것 같았다
그는 히죽 웃으며, 오른쪽 어깨 위의 귀신을 왼쪽으로 옮겨 앉혔다
출처 - 『시와 세계』2015, 여름호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 경북대 독문과 졸업.
-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6호에 〈금호강〉〈변비〉 등을 발표하며 등단.
- 시집;『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지성사, 1994)『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99)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2000) 등.
- 2008년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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