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귀신이 산다 - 송찬호

heystar 2015. 12. 2. 18:52

     귀신이 산다

 

                          송찬호

 

 

그는 전쟁과 독재 시절의 과거에서 왔다

어느 장의사가 못질을 잘못한

대지의 관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헝클어진 머리

천 개의 밤을 보아버린 듯한 퀭한 눈

더구나 오래 씻지도 않은 것 같았다

검푸른 이념의 곰팡이가

보기 흉하게 온몸을 덮고 있었다

 

그는 가끔 누구와 이야기 하고 있는 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어깨 위 허공으로

바나나와 사과를 건네기도 하였다

 

한참 거리를 쏘다니다가

쇼윈도우 앞에 이르러

자신의 어깨가 조금 기우뚱한 걸 알아챈 것 같았다

그는 히죽 웃으며, 오른쪽 어깨 위의 귀신을 왼쪽으로 옮겨 앉혔다

 

출처 - 『시와 세계』2015, 여름호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 경북대 독문과 졸업.

-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6호에 〈금호강〉〈변비〉 등을 발표하며 등단.

- 시집;『10년 동안의 빈 의자』(문학과지성사, 1994)『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 1999) 

         『붉은 눈, 동백』(문학과지성사, 2000) 등.

- 2008년 미당문학상 수상.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경 3 - 허 연  (0) 2015.12.24
세업世業 - 최태랑  (0) 2015.12.24
이사 - 박영근  (0) 2015.11.24
자벌레 - 반칠환  (0) 2015.11.24
열정 - 정미소  (0) 201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