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
반칠환
한심하고 무능한 측량사였다고 전한다. 아무도 저이로부터 뚜
렷한 수치를 얻어 안심하고 말뚝을 꽝꽝 박거나, 울타리를 치거
나, 경지정리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딴에는 무던히 애를 썼
다고도 한다. 뛰어도 한 자, 걸어도 한 자, 슬퍼도 한 자, 기뻐도
한 자가 되기 위해 평생 걸음의 간격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저이의 줄자엔 눈금조차 없었다고 한다.
따뜻하고 유능한 측량사였다고 전한다. 저이가 지나가면 나
무뿌리는 제가 갖지못하는 꽃망울 까지의 거리를 알게되고, 삭
정이는 까맣게 잊었던 새순까지의 거리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저이는 너와 그가 닿지 못하는 거리를 재려했다고 한다. 재면 잴
수록 거리가 사라지는 이상한 측량을 했다고 한다 나무밑둥에서
우듬지까지, 꽃에서 열매까지 모두가 같아졌다고 한다. 새들이
앉았던 나뭇가지의 온기를, 이파리 떨어진 상처의 진물을 온 나
무가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저이의 줄자엔 눈금조차 없었다고
한다.
저이가 재고간 것은 제가 이륙할 열 뼘 생애였는지 모른다
고 한다. 늙으막엔 몇개의 눈금이 주름처럼 생겨났다고도 한다.
저이의 꿈은 고단한 측량이 끝나고 잠시 땅의 감옥에 들었다가,
화려한 별박이자나방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였다고 한다 별과 별
사이를 재고 거리를 지울것이였다고 전한다.
키요롯 키요롯- 느닷없이 날아온 노랑지빠귀가 저 측량사를
꿀꺽 삼켰다 한다. 저이는 이제 지빠귀의 온몸을 감도는 핏줄을
잴 것이라 한다.다 재고나면 지빠귀의 목 울대를 박차고 나가 앞
산에 가 닿는 메아리를 잴 것이라 한다. 아득한 절벽까지 지빠귀
의 체온을 전할 것이라 한다.
- 출처; 월간 『현대시학』 2005년 9월호에서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 1989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 1999년 대산문화재단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 2002년 서라벌 문학상 수상.
-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전쟁광 보호구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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