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자벌레 - 반칠환

heystar 2015. 11. 24. 10:01

 

                                              자벌레 

 

 

                                                                        반칠환

 

 

 

 

     한심하고 무능한 측량사였다고 전한다. 아무도 저이로부터  뚜

  렷한  수치를  얻어 안심하고 말뚝을 꽝꽝 박거나, 울타리를 치거

  나, 경지정리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딴에는 무던히 애를 썼

  다고도 한다.  뛰어도 한  자, 걸어도 한 자, 슬퍼도 한 자, 기뻐도

  한 자가 되기 위해  평생 걸음의 간격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저이의 줄자엔 눈금조차 없었다고 한다.
     따뜻하고  유능한  측량사였다고 전한다. 저이가 지나가면  나

  무뿌리는 제가 갖지못하는 꽃망울 까지의  거리를  알게되고, 삭

  정이는  까맣게  잊었던  새순까지의 거리를  기억해냈다고 한다.

  저이는 너와 그가 닿지 못하는 거리를 재려했다고 한다. 재면 잴

  수록 거리가 사라지는 이상한 측량을 했다고 한다 나무밑둥에서

  우듬지까지, 꽃에서 열매까지 모두가  같아졌다고 한다.  새들이

  앉았던 나뭇가지의 온기를, 이파리 떨어진 상처의  진물을 온 나

  무가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저이의  줄자엔  눈금조차 없었다고

  한다. 
     저이가  재고간  것은 제가  이륙할  열 뼘  생애였는지  모른다

  고 한다. 늙으막엔  몇개의 눈금이 주름처럼  생겨났다고도 한다.

  저이의 꿈은 고단한 측량이  끝나고 잠시  땅의 감옥에 들었다가,

  화려한 별박이자나방으로  날아오르는 것이였다고 한다 별과 별

  사이를 재고 거리를 지울것이였다고 전한다. 
     키요롯 키요롯- 느닷없이  날아온  노랑지빠귀가  저 측량사를

  꿀꺽 삼켰다 한다. 저이는 이제 지빠귀의 온몸을  감도는 핏줄을

  잴 것이라 한다.다 재고나면 지빠귀의 목 울대를 박차고 나가 앞

  산에 가 닿는 메아리를 잴 것이라 한다. 아득한 절벽까지 지빠귀

  의 체온을 전할 것이라 한다.

 

              

 

                    - 출처; 월간 『현대시학』 2005년 9월호에서

 

1964년 충북 청주 출생

1989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9년 대산문화재단 시부문 창작지원 수혜. 2002년 서라벌 문학상 수상.

- 시집;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전쟁광 보호구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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