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문장紋章을 쓰는 가계家系
김유석
물려받은 건 배를 깔고 기는 법
소리 없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버릇, 그리고
소름이 돋을 만큼의 징그러움 뿐이었다.
유전이라 이르지 마시기를, 그러니까
독은 후천적으로 생성된 내성의 결과물이다.
뭔가 왜곡된 듯한 몸
뭔가 제어된 듯한 자세로 나아가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삼투되어 고이기 시작한 그것,
대가리를 치들게 하고
찢어질듯 아가리가 벌어지게 하고
똬리를 틀고 웅크릴 줄 알게 만드는 그것은
자학의 증거이자
고통이 없으면 감각도 무뎌지는 생의
마약과 같은 것이다. 먹이를 물어 삼킬 때마다
함께 밀어 넣어야 하는 스스로의 독에
퍼렇게 중독된 몸 어디, 한때
세상을 다스렸던 파충爬蟲의 위엄은 흔적조차 없고
진화와 퇴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듯한 형체로
누대에 걸쳐 무고한 죄질에 시달려야 하는
나는 난태생卵胎生, 나는 곡선으로 나아가고
제 몸을 쥐어트는 가학적인 문양을 둘렀고
그리고, 나의 피는 차갑다.
- 웹진 『시인광장』 2014년 4월호에서
1960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 전북대학 문리대를 졸업.
-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신월기계화단지〉가 당선되어 등단.
- 시집으로『상처에 대하여』(한국문연, 2005)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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