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뱀의 紋章을 쓰는 家系 - 김유석

heystar 2015. 6. 26. 17:58

뱀의 문장紋章을 쓰는 가계家系

 

                                          

 

 

 

  물려받은 건 배를 깔고 기는 법

  소리 없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버릇, 그리고

  소름이 돋을 만큼의 징그러움 뿐이었다.

 

  유전이라 이르지 마시기를, 그러니까

  독은 후천적으로 생성된 내성의 결과물이다.

  뭔가 왜곡된 듯한 몸

  뭔가 제어된 듯한 자세로 나아가는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삼투되어 고이기 시작한 그것,

  대가리를 치들게 하고

  찢어질듯 아가리가 벌어지게 하고

  똬리를 틀고 웅크릴 줄 알게 만드는 그것은

  자학의 증거이자

  고통이 없으면 감각도 무뎌지는 생의

  마약과 같은 것이다. 먹이를 물어 삼킬 때마다

  함께 밀어 넣어야 하는 스스로의 독에

  퍼렇게 중독된 몸 어디, 한때

  세상을 다스렸던 파충爬蟲의 위엄은 흔적조차 없고

  진화와 퇴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듯한 형체로

  누대에 걸쳐 무고한 죄질에 시달려야 하는

 

  나는 난태생卵胎生, 나는 곡선으로 나아가고

  제 몸을 쥐어트는 가학적인 문양을 둘렀고

  그리고, 나의 피는 차갑다.

                                  

                                  -  웹진 『시인광장』 2014년 4월호에서

 

1960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 전북대학 문리대를 졸업.

-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신월기계화단지〉가 당선되어 등단.

- 시집으로『상처에 대하여』(한국문연, 2005)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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