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동 가는 길
박 해 성
여기서 선사까지는 불과 한 시간 남짓,
강을 건너고 철마를 삼키는 동굴을 지나 신들도 도착하지 않은 움집으로 돌아간다.
우는 아이 젖 물리고 그대를 기다리던 그날처럼 신석기의 지붕 밑에서 나는 한 사내를
기다린다. 꽃이나 달에 홀려 자주 길을 잃던 사람, 육천년 전 당신의 목소리가 귓불을
간질인다. 설레는 가슴 누르고 하늘을 바라보니 검은 달이 뜨는 중천, 먹구름을 헤치고
익룡이 불을 뿜는다. 이름 없는 원시림을 휩쓰는 건 천둥 번개의 불춤, 누구도 기록하지
못한 재앙이라 숲이 활활 타오르고 비명들이 타오르고 멸종의 징후들이 화염처럼 일렁
인다. 빗살무늬 물동이가 재가 되어 흩날린다. 불귀 불귀 귀적에 오른 이들 맨발로 즈려
밟던 부드러운 잿더미 따듯한 흙, 아이야! 이 발자국을 따라가면 아비를 만날지 몰라,
아비의 아비가 어미의 어미가 너를 반길지도 몰라, 드문드문 남아있는 주춧돌의 유해처
럼 채 삭지 않은 살과 뼈의 이야기가 너를 기다릴지도 몰라,
한줄기 된소나기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현대사설시조포럼 『천 개의 손을 가진 바람』 2014, Vol 5 에 수록.
'박해성의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언년傳 (0) | 2015.03.13 |
---|---|
신석기에서 온 손님 (0) | 2015.03.12 |
괄호에 대한 생태학적 고찰 (0) | 2015.02.21 |
지하상가 나-65호 (0) | 2014.12.28 |
어쩌다가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0) | 2014.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