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리뷰

무위사 가는 길

heystar 2014. 11. 4. 16:41

   카메라에 홀려서 한동안 내가 시인이란 사실을 잊고 살았다. 아니, 의식적으로 잊으려 했다는 말이 정직하다.

문학판은 이미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그들만의 리그'에서 발을 빼고 싶었다. 시란 혼자서도 쓸 수 있는 것, 꼭 누구에게서 인정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리뷰란을 채우고 싶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어느 시인이 내 블로그를 묻는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오라고 하고 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가 나를 검색 해 봤다. 동명이인도 많았지만 내 시가 이렇게 사방에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꼼짝 없이 시인이 되고 만 것이다.

   어쩌나... 그러다가 문득 의외의 블로그에서 내 시 몇줄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그 곳은 중고자동차를 거래하는 곳 같았다.

자동차 매매센터와 시 - 여기 그 글을 몇줄 퍼왔다.

 

 .......前略

무위사(無爲寺)란 말이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하지않는 절간 같은곳.

진평왕 39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 이름도 무위사라고 있었고

박해성 시인의 무위사 가는길이란 시도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무위사 가는길,

그의 시는 이룬것이 없어서 잃을것도 없는 몸

돌아올 계산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섰네라고 했다.

지팡이를 들어 허공을 가리키는 노파의 모습. 역설적인 일갈이다.

남해 보리암 산길을 내려오면서 무위사를 떠올린것은.

가을하늘은 언제나 무위사를 생각하게 하는 것인가.

無爲事가 아니면 無爲士의 위인들.

.......... 後略    http://www.bobaedream.co.kr/view? 글쓴이- 담덕moonjk0720-[열린사회와 그 적들] 에서 일부 발췌.

 

   사실 이 시는 2013년도에 발표한 시로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무위사'란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곳, 또는 삶의 어떤 경지 등 복합적 의미를 내포한다. 즉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는 결코 닿을 수 없는 ... 하여 아이들은 알 수 없는 - 강 건너, 혹은 산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  내 딴에는 결코 가볍지 않게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을 다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조단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묻히고 말았다. 물론 작품의 질이 평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그들의 눈이 어두운 것은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었는데... 

   그러나 놀라운 현상은 문단 밖에서 누군가가 이 작품의 깊이를 해독하고 공감했다는 사실이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와 나의 영혼이 소통했다면 나는 시인으로 살아야겠다... 고 다짐한다. 문단의 상투적인 그 어떤 찬사보다도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일깨워주신 눈 밝은 독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이 시를 음미하련다. 그래, 나는 시인이다!!!

 

 

                     無爲寺 가는 길

 

                           박 해 성

 

 

무위사 찾아가네, 낙화 분분한 날에

 

이룬 것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몸

돌아 올 계산도 없이 무작정 길 나섰네

 

아이에게 길 물으니 갸우뚱,

되레 묻네

더러는 강 건너, 산 너머라 이르는데

한 노파

지팡이 들어 먼 허공을 가리키네

 

거기 가면 인간사 아무것도 아니라니

어차피 내친걸음 세상 밖까지 갈까나,

 

석양의 불가지론자, 황톳길을 홀로 가네

 

 

            - 계간 『한국동서문학』2013, 여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