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린시학 계간평]을 찾고보니 벌써 재작년 일이다.
그 동안 내 작품을 관심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 오만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_-;;;
타고 난 반골이라 절벽도 두렵지 않다
정맥 툭툭 불거지도록 한세상 움켜잡고
물러 설 자리는 없다
사철 하 창창한 결기,
턱없는 용기거나 식상한 기도보다는
불꽃같은 허기와 적막이 날 키웠지
허공은 나의 만다라,
눈비가 장을 넘기고
돌 속에 길 닦는다, 오체투지 설산 넘듯
별빛이 촘촘 박힌 옹이마다 관절마다
놀뛰는 저 맥박소리!
바람도 멈칫, 숨죽인다
- 박해성. <소나무, 벼랑에 서다>전문. (『나래시조』가을호)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유사한 제목의 작품이다. 6.25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비탈에 선 나무처럼 몸부림치며 살아 야 했던 젊은이들, 그들의 욕망과 수난의 시대를 그렸던 그 소설처럼 이 작품 속의 소나무 역시 벼랑에 서 있다. "절벽도 두렵지 않다"는 것은소나무로서의 꼿꼿한 지조와 함께 "정맥 툭툭 불거지도록 한세상 움켜잡"으려는 진취적인 젊음의 표상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이 늙는다는 것은 신체가 노약해지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취적인 정신을 잃는 것을 말한다. 정신적인 젊음은 평지에 무덤덤한 소나무로 서 있기보다는 "불꽃같은 허기와 적막"의 공간인 절벽 끝에 서 있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돌뿐인 절벽, 그 벼랑 끝에 뿌리내리면서 " 돌 속에 길 닦는" 소나무의 건강한 생명력, 그리하여 바람마저 숨죽이게 하는 결기, 이 소나무는 바로 화자가 추구하는 정신을 표상하는 투사물이다.
이 시는 필법이 굵직하고 시원시원하여 좀스러운 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시인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적인 호방함이 느껴지는 시이다. 이러한 남성적 어조가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밀도 있는 시어가 잘 짜인 구조 속에서 마치 이육사의 <절정>에서 느꼈던 긴장감처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평설 - 박성민]
- 출처 ; 『열린시학』65호 / 2012, 겨울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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