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밤 - 고미경

heystar 2014. 1. 25. 14:40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밤

 

                                                                    고 미 경

 

 

 

심란은 내란입니다 당신의 언어는 내란이 피운 꽃이겠지요 늦은 밥상을 받듯 허기를

달래며 꽃잎을 따먹다가 자정의 고갯마루를 넘었을 때 어둠의 흰 꼬리가 아홉 개인

것을 언뜻 보았습니다 내란 속 천년을 산 여우 말입니다 피 뚝뚝 떨어지는 생간(생각)

을 야심한 시각에 혼자 씹어먹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도 당신의 눈매가 그윽한 것은

슬픔이 녹아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 슬픔에 취해서 몽롱하고 불경스러운 반란을 꿈

꿉니다 어쩌면 오늘밤은 눈보라 속에서 폐쇄된 국경을 넘어가는 꼬리 아홉개 달린

여우의 발자국이 붉은 꽃잎처럼 피었다 지는 것을 볼 것만 같습니다

 

                                       - 『시와 문화2013, 겨울호에서

1964년 충남 보령 출생 .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인질』(문학의전당, 2008). 

현재 '시비'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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