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구멍에 관한 기억들 - 김정웅

heystar 2011. 2. 15. 12:27

    구멍에 관한 기억들

 

                                     김정웅

 

  

     1

   이따금

   추억의 부피가 더욱 커지는 날이 있다 똑, 똑―

   물이 넘쳐흐르는 소리, 완전히 잠글 수 없는 마음에는

   배수구를 낼 필요가 있다 설거지를 하다가

   울어 본 적이 있는가, 이 더러운 그릇들이 마음이다

   싹싹 비우지 못한 그대가 여전히 많다

 

       2

   자주 영혼을 엎지르는 사람은

   쉬이 타인의 인생을 더럽힌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산다는 거,

   나는 나를 벗어 어두운 세탁기 안에 넣는다

   세탁기가 돌아갈 때는 소리내어 울어도 좋을 것이다

   단번에 울음을 끌 수 있는 전원 버튼이

   몸에도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3

   이 모든 일상적 불행은

   있지도 않은 고기를 찾아 김치찌개를 뒤적대거나

   아버지의 작업복을 몰래 뒤져

   담배 몇 개비를 꺼내는 것과는 다른

   슬픔, 물을 갈다가 깨뜨린 꽃병,

   산산조각이 난 외부를

   병의 주둥이는 꽉 붙들고 있다

   함부로 엎질러진 입구는 견고하다

 

                            [출처] 제7회 《시작》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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