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변두리 - 이귀영

heystar 2011. 2. 9. 14:56

 

변두리

 

詩/이귀영

 

내 얼굴은 변방이다

유행을 입은 아이들은 배꼽티를 입고

중심 깊이를 보이고 있다

나의 중심은 정면에서 봐도 측면에서 봐도 비뚤한 몸

온몸 뼈가 휘어졌다

모딜리아니의 잔느처럼 갸우뚱한 얼굴

사물을 볼 때 생긴 이 슬픈 15도 각도는

너를 만났을 때부터 나를 중심으로부터 밀쳐놓은 것

중심이 움직여 꽃바람에 가고 비바람에 간다

중심이 없으니 무엇이나 중심

밥이 중심이고 글자가 중심이고 척추는 신발이 중심이다

입술이 중심이고 용천(涌泉)이 중심이기도 하다

빈 지갑이 뇌리의 중심이고 진동 없는 핸드폰이 마음의 중심이고

보이지 않는 네가 중심이고 너를 기다리는

식은 커피가 불은 라면이 중심이기도 하다

라벨의 볼레로가 여름을 태우는 중심이고

땅 깊은 겨울은 민들레의 중심이다

아이가 세상의 중심이고 울음은 삶의 중심이고

장미는 가시가 중심이다

눈동자가 없는 눈은 영혼이 중심이듯

            변두리에서 맴도는 너는 나의 중심

가장자리인 너 나는 변두리가 편하다 벽이 가까우니까

 

   

 부산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98년 《현대시》로 등단. 현재 〈내일의 시〉 동인. 시집으로 『달리의 눈물』(한국문연, 2003)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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